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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론드 – 마릴린 먼로의 비극을 재해석한 고딕적 시선

by jslee67 2025. 6. 8.

블론즈 - 관속의 마릴린 먼로에게 사과가 필요한

 

넷플릭스 영화 블론드 (2022)는 앤드루 도미닉 감독이 연출하고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과감하고 분열적인 동시에 몹시 불편한 영화입니다. 전통적인 전기 영화의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마릴린 먼로라는 헐리우드의 가장 상징적이고 오해받은 인물의 명성과 정체성, 트라우마에 대한 광기 어린 악몽 같은 명상으로 관객을 이끕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노마 진과 마릴린 먼로 사이를 넘나들며 섬뜩할 정도로 몰입적인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녀는 이 신화적 인물 뒤에 숨겨진 상처 입은 영혼을 구현해내며 관객을 압도합니다. 하지만 이 인상적인 연기 뒤에는, 관객을 극단적으로 갈라놓은 감독의 비전이 존재합니다.

1. 자신의 이야기 속 유령

영화는 시작부터 이 작품이 단순한 찬사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도미닉 감독은 마릴린을 화려한 아이콘이 아닌, 왜곡된 꿈 속을 떠도는 유령으로 그립니다. 화면 비율의 변화, 흑백과 컬러의 반복 전환, 초현실적 시각 요소들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며, 이는 먼로의 분열된 내면 세계를 시각화하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스타일의 혼돈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헐리우드가 만들어낸 신화를 걷어내고, 그녀의 심리적 고통을 드러내려는 의도입니다. 그 결과는 전기 영화라기보다는 고딕 공포에 가까운 작품, 영광보다는 그림자 속으로의 추락입니다.

2. 아나 데 아르마스의 대담한 변신

이 혼돈의 중심에는 아나 데 아르마스가 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외모의 재현을 넘어, 내면까지 깊이 파고들며 노마 진의 순수함과 마릴린의 유혹적인 페르소나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그녀의 연기는 그 자체로 영화의 정서적 중심이며, 때로는 무섭고도 아름다운 이중성을 지닌 인물상을 구축합니다. 영화의 방향성에 비판이 있더라도, 그녀의 연기만큼은 칭찬받기에 충분합니다.

3. 고통의 무게: 예술인가 착취인가

블론드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마릴린의 고통에 대한 집착입니다. 성폭행, 정서적 붕괴, CGI 태아와의 대화 등 그녀가 겪는 고통은 적나라하게 묘사되며, 일부에서는 이를 착취적이라고 비판합니다.

비평가들은 영화가 그녀의 지성, 유머, 회복력을 거의 다루지 않으며, 오히려 그녀를 단순한 피해자의 이미지로 고정시킨다고 지적합니다. 이 영화가 그녀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한 감정 소비인지 되묻게 됩니다.

4. 형식에 집중한 연출, 본질을 흐리다

시각적으로 블론드는 인상적입니다. 촬영감독 체이스 어빈은 장면 하나하나를 회화처럼 구성하지만, 형식에 대한 집착이 내러티브를 가릴 때가 많습니다. 감정의 흐름은 때로 미장센에 묻히고, 계속되는 스타일 변화는 관객을 마비시킵니다.

도미닉 감독의 연출은 야심차지만 동시에 이질적입니다. 관객은 먼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그녀의 고통을 지켜보는 위치에 놓입니다. 이 차가운 거리감은 의도된 연출일 수도 있으나, 그녀를 인간이 아닌 상징으로 격하시킬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5. 명성과 통제의 비극적 메타포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론드는 강력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마릴린을 이미지에 갇힌 여성으로 그려내며, 헐리우드와 대중 문화가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는지를 드러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그녀의 삶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삼켜버린 시스템을 고발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블론드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상징적 존재로서의 마릴린이 처한 비극에 대한 우화이며, 보이지 않게 감시하고 소비하는 대중의 역할을 묻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 최종 평가

블론드는 범주를 정의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그것은 무섭고, 아름답고, 혼란스럽고, 때로는 잔인하며, 아나 데 아르마스의 연기는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고통 중심 서사와 극단적인 연출 방식은 분명 호불호를 나누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전기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탄식이고, 유령 이야기이며, 영화라는 매체로 가능할 수 있는 가장 도발적인 감정 실험 중 하나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감정적 정화일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그것이 고통을 미학으로 포장한 불편한 착취일 것입니다.

 

https://youtu.be/73YDsku3JQY?si=z96vyU9LePKRzsxj